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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한 이야기 책/끈기

'끈기' (8) - 바다에서

by 아리가람 아리가람1 2020. 5. 1.

며칠 후, 다시 에야크가 코요테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얼린 순록 고기 한 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여기, 이거."

"이게 뭐야?"

"작년에 사냥해서 얼려 둔 고기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넌 그동안 사냥한 것도 없잖아."

"고마워."

코요테는 바로 칼을 꺼내어 고기를 잘라 입으로 가져갔다. 사실 며칠 동안 코요테는 제대로 된 고기를 먹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 중에 누구라도 순록을 사냥했다면 잔치가 벌어져 배부르게 먹을 수가 있었겠지만, 코요테가 마을로 돌아온 후 누구도 사냥에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에 마을 사람들은 공무원으로 취직을 많이 하였고,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취미로 사냥을 떠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에야크처럼 사냥만 해서 먹고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무 직업도 갖지 못한 코요테는 당장 사냥을 하고 동물의 가죽을 벗겨서 팔아야만 했다. 물론 가죽을 벗기고 남은 고기는 훌륭한 식량이 되었다. 그래서 때로는 에야크 없이 홀로 순록 사냥을 나가 보았지만 한 번도 사냥에 성공하지 못했다.

"에야크, 내일은 바다에라도 나가 봐야겠어."

"바다로? 기름이 둥둥 떠 있는데?"

"그래도 나가 봐야지 어쩌겠어. 굶어 죽을 수는 없잖아."

"굶기는 왜 굶어? 바다표범 뼈로 특산품을 만들어서 팔면 되지."

"하지만 난 그런 기술이 없는 걸."

"아, 맞다. 넌 그동안 도시에 가 있었지. 하지만 걱정 마. 내가 아버지께 배운 기술이 있으니까. 그리고 미리 만들어 둔 것도 있고. 그러니 당분간은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거야."

"아니, 아니야. 내가 네 도움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어. 무엇보다 사냥꾼으로 인정받고 싶어. 우리 아버지가 사냥꾼이었듯 나도 사냥꾼으로 살고 싶어."

어느새 코요테는 자신이 고향에 정착하려면, 고향에서 살아남을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할 줄 아는 일은 이제 사냥밖에 없었다. 코요테에게는 사냥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에야크, 그러지 말고 내일은 나와 함께 바다로 나가자."

"나야 뭐. 마침 우미악도 수선해 두었으니 문제는 없겠지."

에야크는 자신 있게 말했지만 우미악으로 사냥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미악이 모터보트에 비해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코요테는 빨리 사냥하고 싶은 욕심에 에야크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모터보트를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우미악 말고 모터보트 없을까? 기동성을 살리려면 모터보트가 좋겠어."

"음, 우리 집에는 모터보트가 없어. 하지만 모터보드를 가진 마을 장로에게 이야기해서 빌려 볼 게. 대신 기름 값을 우리가 대야 할 거야. 뭐, 그것도 상관없어. 외뿔고래의 뿔을 팔면 되니까."

코요테는 스스로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을 배려하는 에야크가 한없이 고마워졌다.

"에야크, 정말 고마워. 그럼 내일 만나자."

다음날, 마을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한 채 둘은 바다로 나갔다. 에야크가 함께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 코요테는 초보 사냥꾼에 불과했다. 더욱이 마을에는 코요테에게 사냥 기술을 제대로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다. 노련한 사냥꾼이었던 어르신들은 어느새 거동조차 불편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젊은 사람들은 그저 관광객을 대상으로 공예품이나 만들어서 팔고 있는 수준이었다. 때로 그들은 다른 마을에서 바다표범 가죽을 구입해 와서 장갑과 외투를 만들어 팔고는 했다. 만약 코요테와 에야크가 사냥꾼이 되어 바다표범이나 순록을 사냥해 온다면, 그들은 굳이 다른 마을까지 가서 가죽을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코요테와 에야크는 마을 사람들의 기대에 찬 시선을 무겁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 부담감을 지우려고 에야크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가자! 이번에는 아주 큰 놈으로 잡는 거야. 할 수 있지?"

"좋아, 좋아.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잡을 수 있을 거야."

그들은 보트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갔다. 여기저기 얼음들이 떠다니는 틈새로 기름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한참 나가니 파도에 부서졌다는 유조선을 볼 수 있었다. 유조선에서는 여전히 기름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기름막이가 그것을 간신히 막고 있는 형국이었다. 

"흠, 어떻게 배가 파도에 깨지는 것일까?"

에야크가 이렇게 물었지만, 코요테라고 해서 답할 수 있는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름이 새는 유조선 옆으로 그들이 보트를 돌려 나갈 무렵, 다른 보트에 타고 있던 한 방제 요원이 소리쳤다.

"이봐요! 이것 좀 잠깐 도와주시면 안 돼요?"

그 방제 요원은 여자였다. 입은 옷으로 보아서 아마 환경 단체에서 나온 모양이었다. 코요테는 여자가 짐 옮기는 것을 한참 동안 도와주고 나서 다짜고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유조선이 파도에 깨질 수 있죠?"

"아, 그거요? 파도가 끈기 있게 치기 때문이죠."

"끈기 있게 치는 파도요?"

코요테는 좀 놀랐다.

'어떻게 파도 따위가 쇠를 깨드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누잇의 전통 배인 우미악도 파도에 깨지는 경우가 없었다.

"예, 파도는 약해 보이지만 끊임없이 몰아치면 배의 한 부분이 파손되고는 해요."

"허, 그래요?"

"그럼요. 그런 문제를 유체 역학 분야에서는 유탄성 문제라고 불러요."

"유탄성 문제요? 조금 어렵네요."

"그럼 쉽게 비유해 볼게요. 끈기 있는 새우가 고래를 잡는다는 말이 여기에 딱 맞겠네요."

"끈기 있는 새우가 고래를 잡는다고요?"

"예, 거대한 유조선의 강력한 강철 선체 앞에서 파도의 힘이란 거대한 고래 앞에 있는 새우처럼 보잘것없죠. 그런데 바로 그 새우 같은 파도가 고래 같은 배를 깨뜨린다는 말이에요. 오직 끈기 있게 배에 부딪치는 것만으로 말이죠. 그러니 끈기 있는 새우가 고래를 잡는다는 말이 적절한 비유 아니겠어요? 끊임없이 무엇인가 반복하게 되면 거대한 힘을 갖게 된다는 것에 대한 가장 적절한 비유 같네요."

코요테는 여자에게서 뭔가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자신도 잘 몰랐다. 다만 여자의 지유가 재미있어 마음속에 깊이 기억해 두었다. 

'끈기 있는 새우는 고래도 잡는다고?'

코요테가 그 문구를 마음에 새기는 동안에 여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새우가 고래를 잡은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러니까 강철로 만든 배가 파도에 깨지는 일이 있었던 거죠. 1999년에는 미국 근처에서 원목 운반선 뉴카리사 호가, 같은 해 프랑스 인근 해역에서 유조선 에리카 호가, 2002년에는 스페인에서 유조선 프레스티지 호가 같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죠."

"오, 그래요?"

"예. 그리고 바로 그 유탄성 문제, 그러니까 파도나 배 안에 실은 액체의 충격에 쇠가 깨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국제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요. 아마도 배와 유체가 공진을 일으켜서 쇠가 깨진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어요. 일단 쇠가 조금이라도 갈라지면 그 부분에 응력이 집중되면서 금속 피로 정도가 급격히 높아지니까요. 다시 말해 깨진 부분에 더 큰 힘이 모여 작용하면서 쇠가 갑자기 약해진다는 것이죠."

코요테는 유탄성 문제, 응력, 공진, 유체, 금속 피로 같은 어려운 말이 나오자 혼란스러웠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내비치기는 싫었다. 코요테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보이려고 애쓰다가 이렇게 말했다.

"흠, 좀 어려운데요."

"아, 미안해요. 쉽게 설명할게요. 높은 음을 내는 소프라노가 끈기 있게 소리를 질러대면 유리잔이 깨지게 돼요. 끊임없이 부는 바람에 거대한 강철 다리가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무너지는 것도 그런 현상들 중의 하나죠. 그래서 워싱턴 주에 있던 타코마 브리지도 무너진 적이 있어요. 쉬지 않고 부는 산들바람에 강철 다리가 무너지는 것이나, 반복적으로 치는 파도에 강철 배가 깨지는 것이 서로 비슷한 원리지요."

여자가 쉽게 설명을 해주어서, 코요테는 이해가 되었다.

"와, 놀라운데요. 파도가 거대한 배를 깨뜨리다니!"

그가 감탄하고 있을 때 에야크가 다가왔다. 

"코요테, 빨리 우리 할 일이나 하자. 여기에서 머뭇거리다가는 사냥을 제대로 못 하겠어." 

그때서야 코요테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퍼뜩 정신을 차린 듯 여자에게 급하게 인사하고는 자리를 떴다. 

"자, 그럼. 다음에 또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오늘 좋은 것 배우고 갑니다. 조금 어려웠지만요."

"예, 짐을 옮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코요테 일행은 다시 사냥에 나섰다. 그러나 고래는 물론이고 바다표범이나 물범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바다에서 몇 시간 헤매다가 결국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마을 사람들은 침묵했다.

다음날, 코요테 일행은 다시 바다로 나갔으나 또 허탕을 쳤다. 그 다음 날에는 툰드라로 나가 토끼라도 잡아보려고 했지만 또 허탕이었다. 그렇게 바다로, 툰드라로, 숲으로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지만 계속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마을로 돌아오면 마을 사람들은 따뜻한 말을 건넸지만, 코요테는 오히려 부담스러워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시 마을을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일단 빌린 돈부터 갚아야 하는 걸. 돈을 갚을 수만 있다면 그 딜러를 찾아가 다시 일자리를 부탁해 볼 수도 있을 텐데.'

코요테는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에야크가 선물로 준 무스 가죽으로 막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바로 그 순간 딜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아니, 아니야. 빌려 주는 거야. 자네는 반드시 그것을 갚아야만 하네. 단, 조건이 있어. 자네가 세계적인 영업 사원인 조 지라드의 성공 비결을 알아낸다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되네.'

그는 딜러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조 지라드의 성공 비결이라는 게 뭐지?"

그는 쓰레기통에서 주워 고이 간직해 온 책, 바로 조 지라드의 삶을 자세하게 적어 놓은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 비결 따위를 찾을 수는 없었다. 코요테는 실망하면서도 끝내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

"흠, 도대체 지라드의 성공 비결이 뭐지?"

코요테는 궁금증을 안은 채 잠이 들었다. 비록 여름이었지만, 북극 밤의 한기가 온몸을 덮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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